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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임 영화감상



페임 Fame 2009

 

케빈 탄차로엔

 

오랜만에 뮤지컬 영화+ㅅ+

찾아봤더니 1980년 제작된 앨렌 파커의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 한 거라고... 원작은 못봤지만. (씨네21에선 원작에 비해 너무 현대적인 각색이 들어가서 MTV 스타일의 인위적인 느낌이 많다고 평해놨다.)

 

예고편을 봤을 땐 케링튼 페인이라는 춤추는 금발 여자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술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진 인물들이 고르게 배치되어 있다. 초반엔 영화로 완전 몰입했다. 들썩이는 음악이나 춤, 개개인의 캐릭터도 재밌었고. 아쉬운 점이라면 후반부로 갈 수록 그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거다. 루즈해지는 것도 그렇고 일단 포커스를 여러 군데 두다보니 다소 산만.

 

그래도 예술을 지향하는 십대들의 성장통을 재밌게 그렸다. 들여다보면 비슷한 계통의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을 하나씩 가져와 인물들에게 한가지씩 배치한 거 같다. (두시간짜리 뮤지컬 판 고쿠센 같은 느낌? ㅋㅋ) 부모와의 불화,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고뇌, 로맨스, 유년기의 상처, 창작과 현실의 괴리, 성공에 대한 열망, 위너와 루저 등. 캐릭터들은 딱 그만큼의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여정과 성장을 짧은 영화 한 편에 녹여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냥 갈등만 던져주는 인물도 있고 갈등을 끝끝내 풀지 못한 인물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해피엔딩, 이런 설정보다는 훨씬 나은 거 같다.

 

또 한가지 아쉬운건 마지막 공연 부분. 사실 뮤지컬이나 공연이 소재로 쓰인 영화들을 보면 늘 기대하게 되는 클리셰가 있다. 물랑루즈, 시카고, 스윙걸즈, 린다린다린다, 코요테어글리, 스쿨오브락, 즐거운 인생, 시스터 액트 등등 의 영화에서도 보면,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든 못하든 도입부터 달려와 전개되어 오던 성장이 절정 부분에서 빵, 터지는 하이라이트적인 공연 말이다. 근데 페임에선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약했다ㅠ 전반부에서 너무 강하게 가는 바람에 오히려 뒷심 부족이었단 느낌.

 

그래도 든든한 눈요깃거리에 귀도 즐거우니 영화관에서 보길 추천할 만 하다.

 

원작이 궁금해지는군.

 


바시르와 왈츠를 영화감상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

 

아리 폴만

 

작년에 한동안 씨네큐브 등지에서 이 영화에 대한 홍보물을 발견하곤 했을 땐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혹은 애니메에 대한 공포가 컸기에 못 본척, 했었다. 몇 년 전에 '반딧불의 묘'를 보고 후폭풍에 시달렸던 경험도 있고. 하지만 어찌되었든 봐야할 영화들은 꼭 보게 된다. 아침 신문에서 EIDF 상영작으로 EBS에서 방영해 준다고 했을 때, 긴장했다;ㅁ; 그리고 1시간 30분 동안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바시르와 왈츠를' 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략해 학살을 벌인 '샤브라와 샤틸라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전쟁 애니메이션이다. 흔히 애니메이션, 하면 일본 지브리나 미국의 드림웍스 정도를 떠올리게 되지만 이 영화는 이스라엘 감독이 만들었다. 우리나라로 따져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한 좌익 감독이 한국침략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 정도?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주인공이 과거 레바논 전쟁에 참여했던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전쟁 동료였던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진행된다. 애니메이션 치곤 독특한 구성이다.

 

묘하게 평면감과 입체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화면에 집중하게 된다. 알록달록하고 사실적인 3D 영상은 아니지만 섬세한 묘사와 스토리에 적절한 배경의 특징을 잡아낸 것 같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명암을 뚜렷하게 부각시켜 그것으로 하여금 배경의 공포나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낸다.(내 생각이지만-_-)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식도 새롭다. 학살에 참여했던 주체인 주인공 '아리'는(아마도 감독 자신인 듯?) 학살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지 않다. 분명 자신이 그곳에 있었는지조차 희미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환상인지 진실인지를 알고 싶어하며, 당시 동료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서 기억의 편린들이 모이며 촘촘하게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을 직조해 나간다. 하지만 결국 그는 유일하게 가진 자신의 기억만큼은 허구인지 진실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지금에 와서야 과거를 돌아보며 상흔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아니면 학살의 고통을 잊기 위한 자위의 환각인지 혹은 어쩌면 모두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나만이 느꼈던 고통스런 진실인지 파헤쳐본들, 그때 그들은 거기에 있었고 죽어갔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직접 등 돌린 사람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고 누군가는 그들이 조준하는 것을 돕기 위해 조명탄만을 쏘아올렸겠지만. 살인자나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이나 모두 같은 부류니까.


영화 속에 어떤 사람이 설명했다. 한 참전 군인은 처음 전쟁에 참여하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는 전쟁의 장면을 마치 사진이나 경치를 감상하듯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 프레임을 뒤흔들만한 위력의 참혹한 현장을 마주했고, 그 프레임은 깨졌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지금 프레임을 걸쳐놓고 (비록 저것이 실사를 찍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이야기를, 사람이 그려낸 그림으로 보고 있지만)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참전 군인이 그러했듯 현실을 깨닫는 순간 지옥이 될 것이었다.


아무도 영웅이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벌어지고야 마는.

인간은 때론 쌓아온 모래성을 허물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한순간에 지금껏 공들인 모든 세계를 엎어버린다. 그것은 전복이 아니라 파괴다. 

 

바시르의 사진이 걸린 거리에서 대치 중인 두 군대. 기관총을 들고 달려나간 한 사내는 마치 왈츠를 추듯 총을 쏘아댄다. 전쟁의 참상 중간 중간 맥이 빠지게 흘러나오는 경쾌한 왈츠곡들이 오히려 음울하고 괴로운 순간의 기억을 증폭시킨다.

 


구글베이비 영화감상






구글베이비 
Google baby 2009

 

지피 브랜드 프랭크

 

EIDF 2009 개막작

 

 

구글베이비란?

 

세계적인 미국 인터넷 검색 엔진 회사인 구글(google)과 아기(baby)의 합성어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에 등장한 3대륙에 걸친 아기 생산 방식을 의미한다.

 

도론은 그의 동성애 파트너와 함께 기증받은(구매한) 난자와 정자를 대리모에 이식시켜 딸을 얻는다. 그는 아기를 얻기 위한 물질적 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한 채 처분했고, 9개월을 마치 임신한 듯이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대리출산에 관한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첨단 의학과 대리모를 통한 아기 생산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난자 기증자(판매자)를 소개하고 얻어진 난자를 인도로 배송하는 역할을 한다.

 

인도에 있는 한 클리닉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불룩한 배를 붙잡고 산통을 느끼는 산모는 갈색 피부에 까만 머리를 가진 인도 여인.

하지만 그녀의 배를 갈라 끄집어 낸(제왕절개) 아기는 하얀 피부에 금발이다. 그녀는 미국의 한 부부를 위해 열달 동안 대리모 역할을 수행했다. 가난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집을 사기 위해 이런 결정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클리닉에 대리모를 의뢰하는 주문은 끊이질 않는다. 리스트가 꽉 차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클리닉의 병실에는 한 방에 대여섯 명의 인도인 대리모들이 2개월, 5개월 혹은 7개월 된 태아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알과 고기를 얻기 위해 총총히 가두어 기르는 치킨 타워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난자 제공으로 금전 거래가 오가는 시장을 형성했다. 기증자의 가치는 물론이고(기증자라는 말 대신 판매자라는 말을 써야 옳다. 그것이 보기 불쾌할 수록 더더욱!!!!) 인간 생명 자체의 존엄을 가치 평가하는 것이다. 합목적성을 잃고 도구로 전락한 여성의 몸은 어떠한가. 게다가, 더 위험한 것은 그들이 제 3세계에 사는 빈곤층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국가, 인종, 피부색, 성별 등에서 모두 약자로 배제될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의 몸은 단지 인간을 일구는 '밭' 정도로 여겨졌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따져묻기 전에 애초에 이건 불공평한 계약이다. 그리고 설사 '불임부부' 혹은 '동성애 부부'의 간절한 소망일지라도, 이미 그 시장을 통해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브로커들은 그들 사이에서 더욱 횡행한다. 암시장이 생겨나면 고통받는 것은 오히려 '판매자'와 '구매자'가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 대리모가 되겠다고 나서는 제3세계 여성들에게 그것이 진정 자발적인 의사결정이었는지에 관해서도 물어야 한다. 대리출산을 한 돈으로 집을 마련한 여성의 남편이 '대리모가 아니면 어떻게 내 아들을 장교로 만들 수 있겠어요? 앞으로 들어갈 돈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정말 소름이 끼쳤다. 

 

너무 일상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 신체는 생각보다 쉽게 거래된다. 존엄성을 따지는 일이 고루해 뵌다면, 그래, 기왕 거래가 된 마당에 이제는 어떤 관계 속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할 때인 것 같다. 게일러빈은 '여자거래'에서 젠더는 거래의 규칙을 표시하는 일종의 낙인이며, 이것은 어떤 이가 원래는 가지고 있지 않던 권리를 다른 이의 권리로부터 가져와서 이들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 권리가 양도되는 과정은 매우 일상적으로 재생산되며 비대칭적인(대개 여성에게 불리한) 과정이다.

 

작년이었던가, 학생회관 3층 여자화장실 문에 손톱만한 종이가 붙어있었다. 아주 은밀하게(?) 숨겨놓듯 붙여진 그 종이에는 놀랍게도 난자 기증자를 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은 석순 32집에 실었다) 나와 내 동료들은 난자를 구하는 이 불임 여성은 고려대학교 화장실에 종이를 붙임으로써, 적어도 2세의 똑똑한 머리를 조금이나마 기대했을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력이 2세의 두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백퍼센트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가능성쯤은 염두에 두었겠지)  

 

영화에도 나오지만 난자 기증자(판매자)를 찾을 때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 듯 기증자의 사진이나 신상명세를 보고 고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여자는 어때?' '쌍꺼풀이 없잖아, 난 우리 아이가 쌍꺼풀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이 여자는?' '좀 사나워 보이지 않아?' '이 사람은 어때?' '나이가 너무 많아. 난자가 건강하지 않으면 어떡해!'

 
선의의 기증자가 존재하고 가치 교환을 배제한 의사결정이 오갈 때, 충분한 인간적 배려와 법적 완충장치가 받쳐졌을 때 조금은 고려해볼만 하겠다. 정말이지, 최근 한 방송사 드라마도 대리모를 다루고 있던데, 그것이 언제나 여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할까봐 겁이 난다-_- (그 드라마에서도 여성은 경제적 약자이고 자신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대리모의 길을 택한다)

영화 속의 한 난자 기증자인 여성은 배란을 돕기 위해 스스로 주사기를 배에 찌르면서 스스로를 생식기관을 조절당하는 로봇 같다고 했다. 또한  난자 기증을 위해 인공적인 배란 촉진제를 맞는 것은 나중에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지만 난자를 제공하고 받은 돈의 액수를 생각하면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단다.

 

 

카메라는 덤덤하게 현상을 비춘다. 아니 오히려 현상들이 너무 덤덤하고 처음부터 그러하듯이 흘러가서 더 놀랍다.

 

 

 

 


썸머워즈 영화감상



썸머워즈 (Summer wars) 2009

 

호소다 마모루

 

090818관람

 

일본문화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늘 자신의 전통이나 문화를 자랑하듯 잘 버무려 놓는다. 그게 구닥다리 같거나 아집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가끔은 과도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엿보이는 면도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마저도 납득할 수 있게끔 한다.

 

써머워즈는 일본의 대표적인 두 문화 아이콘을 결합한 애니메다.

영토를 기반으로 영주와 가신의 관계를 누렸던 사무라이 문화와 대가족 전통을 배경으로,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과 컴퓨터, 인터넷 산업을 소재로 삼았다.

 

형식은 다분히 현대적이고 이성적이지만 게임을 구성하는 콘텐츠라든가 게임진행자(여자주인공 나츠키) 그리고 그 가상세계 속을 떠도는 사용자는 감성의 결정체들이다. 대가족이 존재하는 전통 가옥과 현실 세계를 모두 대신하는 가상세계의 양립, 그리고 가상세계의 위기가 곧 현실로 다가오는 매커니즘은 가히 블록버스터급이다.

 

90세 생일을 맞는 이가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라는 점, 그녀의 딸-며느리-손녀로 이어지는 가계에서 여성 파워가 남달리 그려졌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하지만 여자주인공을 도와 기술적인 부분으로 그것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것은 남성이다. 평범하지만 천재성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일본 만화나 영화에서 종종 드러나는 설정이다. 재미있다.

 

결국 공공의 적을 생산해낸 것은 남성이며, 그것을 군사실험의 도구로 선택한 것은 미국의 군부라는 재밌는 설정이 드러난다. 그리고 세계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내 옆의 가족에 의해 탄생된 사실은 이 애니메이션의 얼개를 더욱 단단하게 해준다. 그 적은 애초에는 분노나 원수가 아니라 목적없이 생산되지만 (본질만 파악했을 땐) 이야기 속 가족의 갈등과 비례하며 결국 세계 지배의 야욕을 드러낸다.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재밌었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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